▲ 신창열 관광학박사/한국웰빙문화관광협회장 ©브레이크뉴스 하인규 기자
|
최근 1년 동안 준비해 온 오페라가 공연 하루 전날 무대가 완성되지 못해 전격적으로 취소를 결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공연은 대전예술의 전당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자체 제작한 오페라 ‘운명의 힘’이다. 본 공연은 역대 제작 오페라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오케스트라 80명, 합창단 50명, 솔리스트 15명, 무용단 7명을 포함해 출연진만 155명이다. 한편 1월부터 유료회원을 대상으로 판매한 티켓 예매자는 1,585명이며, 1~2월의 티켓 예매자만 약 13%로 1년 가까이 공연을 기다린 셈이다. 오페라 취소로 인한 보상비는 출연진 인건비 3억 원과 예매 환불금 2천만 원 등 3억 2천만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로 관객의 황당함은 물론 신뢰감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으며, 대전예술의 전당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은 물론 지역 망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의 준비를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공연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입찰제도’의 맹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오페라의 무대 제작을 위한 업체 선정은 제작비용 1억 원으로 일반용역 입찰방식으로 진행됐다. 모두 11개 업체가 응모했으나 1순위 업체의 부적격 처리로 2순위 업체가 선정되었다. 입찰에 응모한 11개 모든 업체는 무대 제작 전문업체가 아닌 것으로 확인돼 놀랍기만 할 뿐이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입찰제도의 구체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류평가와 최저입찰가로 이뤄지는 경쟁입찰 방식이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 대전예술의 전당은 그동안 19번의 자체 제작 공연 준비 과정에서 모두 같은 입찰방식으로 무대업체를 선정해왔다. 이는 공연 무대 제작이라는 문화예술 분야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지 못한 입찰방식이다.
둘째, 무대 제작업체의 선정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누구나 입찰 응모가 가능한 방식으로 특정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다. 무대 제작은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선정과정에 실적 제한심사가 이뤄지지 못해 이번 공연 취소사태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최근 선정된 제작업체로 2021년 ‘건축물 일반청소업’, 2022년 ‘내부 통신 배선 공사업’ 등 무대 제작과 거리가 먼 비전문업체다. 전문성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업체의 참여를 걸러내지 못했다.
셋째, 입찰금액의 범위에 따라 입찰방식을 다르게 적용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입찰금액이 1억 원 이상 2억2천만 원 미만의 경우, 서류평가와 적격심사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입찰방식으로 실적 제한심사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5천만 원 이상 1억 미만의 사업은 2인 이상의 수의계약으로 입찰이 진행되지만, 구체적인 참가 자격의 제한은 물론 실적평가가 가능하여 무대 제작 경험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불합리한 입찰제도는 오랜 시간 곪아오다가 터진 것으로 무대 제작과 같이 일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입찰제도는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이벤트 및 MICE 산업계에서 꾸준한 개선의 요청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계약이행의 전문성ㆍ기술성ㆍ창의성ㆍ예술성 등이 필요한 경우, 다수 응모업체의 제안서를 평가한 후 협상 절차를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업체 선정방식은 기술 능력과 입찰가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며, 기술 능력 평가(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구성) 80점과 입찰가격 평가 20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사업의 특성ㆍ목적 및 내용 등을 고려하여 필요한 때에 분야별 배점 한도를 10점의 범위 안에서 가감하여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 따른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기술 능력 평가(정성적 평가)를 높게 받기 위하여 예정가격을 무시하고 제안서가 과장되거나 실현 불가능한 내용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평가위원의 판단을 현혹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왜곡시킨다. 둘째, 입찰가격 평가를 높게 받기 위하여 비현실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가격점수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낮은 가격일수록 경쟁우위를 갖는다. 실제로 정성적 평가가 높은데도 경쟁사의 낮은 입찰가로 인해 역전되어 선정되지 못하는 사례가 가끔 발생한다. 특히 예산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덤핑 가격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셋째, 저가 입찰로 선정된 업체와 계약하는 경우, 제시한 제안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발주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단 해당 용역을 수주하고 계약하는 것을 목표로 입찰제도의 맹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벤트 및 MICE 분야의 용역 성격과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의 적용은 적합하지 않다. 정성적 평가에 해당하는 제안서의 내용은 용역수행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며, 가격평가의 중요성은 매우 낮거나 의미가 없다. 결과적으로 계약금액에 따라 용역의 내용이 가감되기 때문이다. 입찰가격의 배점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입찰제도의 맹점과 악용 사례로 인한 피해를 없애고 보다 합리적인 입찰방식에 대해 다방면으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전혀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지난 새만금 잼버리대회에서 백서 제작업체는 ‘문구점’, 간식 공급사는 ‘사무기기판매업체’, 상징물 제작사는 ‘속눈썹 시술업체’로 용역계약이 체결된 것도 입찰제도의 맹점과 무관치 않다. 이번 기회에 불합리한 입찰방식에 대한 다양한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입찰제도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
신창열 한국웰빙문화관광협회장(관광학박사)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